펀글

청춘

현진호 2004. 7. 29. 15:08

지난 수 십 년 동안, 영화 속에는 언제나 이런 인물이 등장했다.

집을 나와 떠돌면서, 머리는 헝클어진 채, 수염을 기르고,

오토바이를 타고, 길에서 싸움을 하고,

사랑에 빠지지만 정착하지 못하는 인물.

이런 캐릭터는 죄다 남자들이다.

남자들은, 왜 방황하는 것일까?



<에덴의 동쪽>에 나오는 제임스 딘에게도,

<아이다호>의 리버 피닉스나 키아누 리브스에게도,

우리 영화 <비트>의 정우성에게도, 나름대로 방황의 이유는 있었다.

그러나 그 이유를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그들은 "청춘이었기 때문에" 방황한 것이다.

여기서 "청춘"이란 "소년"과 "어른" 사이에 놓여진 특수한 기간으로,

남자는 소년에서 성인이 되기 위해 방황한다.

소년시절을 졸업하는 시기의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집시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예감한다.

그들은 자신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길에

알고싶지 않은 진실과, 원치 않는 책임감, 스스로 경멸하는 비열한 행동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미리 엿보고, 그곳에서 도망친다.

그리고, 평생 보상받지 못할 영혼의 자유로움을 "청춘"의 이름으로 얻는 것이다.

게다가, 청춘의 방황에는 "아름다움"이라는 보너스까지 있다.

시대를 불문하고, '방황하는 남자'란 언제나 매력적이지 않았던가.

그 대표주자인 제임스딘과 리버 피닉스도 그랬다.

그들은 방황하다가,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죽었고,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아름다운 청춘으로 남았다.

그러지 못한 청춘들은, 수염을 깎고, 오토바이를 팔고,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하기 시작한다.

전설은 흔한 것이 아니니까.



그런데 요즘 남자들은, 방황할 시간을 갖기에는 너무 바쁘다.

이 치열한 세상에서 그들에겐 생존의 문제가 너무 시급하기 때문에,

방황의 시간을 뛰어넘고 서둘러 어른이 된다.

그러나 2004년 현재를 살아가는 저 각박한 남자들의 가슴속에도,

오래된 영화 속의 '방황하는 청춘'에 대한 향수는 남아있다.

그래서 그들은, 50 이 넘었을 때, '이제는 방황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 김C의 남자이야기 중에서... -